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단순하게 정의 하자면 하기 싫은 일도 해내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꼰대같이 들려도 어쩔 수 없다. 여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90%솔직하게 말하는 곳이니까
그런데 요즘은 내가 생각한 어른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걸까? 그럼 옛날에는 어른이 많았을까?
최근 갯마을 차차차라는 드라마에서 아주 이상적인 동네 공동체를 그려넣었더라.
이웃 모두가 주말이면 아침일찍 나와 동네를 청소하고, 최저시급만 받고 열심히 일해주고, 같은 식당을 하는 경쟁업체이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위해주고 돕는 모습이 마치 유토피아를 그려넣은것 같았다.
물론 갈등도 있지만 그들은 굉장히 그 갈등을 잘 풀어나가는것 같다.
그 드라마가 굉장히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사실 현실불가능한 것이기에 그렇다.
우리들은 가슴속에 모두 현실불가능한 것들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먼저 손내미는 것이 두렵고 또 내민다해도 상대방은 마음을 열 생각이 없다.
이런 상처가 오고 가고 하는 상황속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올해 내가 운영하는 작은 공방에서 손놓고 쉰 계기가 있었다.
어쩌면 일을 시작하고 가장 보람된 것은 누군가를 또 이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게 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인데 그런 과정속에 만난 한 사람에게 마음을 많이 주었다.
진심이였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일방적으로 끊었다. 사실 순간적으로 인 마음도 아니고 점차 점차 멀어졌던 것 같다. 그 친구의 그간 행보를 곱씹다보면 말이다.
참 섭섭하고 서운함이 많았다. 그 순간에는...그러다가 냉랭해져버려 아쉽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이가 되었는데 이쪽일하며 진심을 다하다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더라.
그렇게 나 홀로 나는 뭘 잘못했을까? 아니...잘한거야. 잘한걸까?하며 지나간 시간이 거의 1년이다.
감정정리가 되니 글이 써보고 싶었고 또 그 친구가 보고 싶기도하고 또 하는 일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일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자신이 될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사람에게 기대하고 싶지 않고 사람을 믿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어느새 사람이 좋다.
아쉽게도 인연의 한가닥은 잃었지만 그 속에서 또 하나를 배워가며
내 길을 걷는 법을 알아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다.
애초에 어른이라는 기준이 있었을까?
즉흥적이고 제 멋대로인 내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싶다.
분명한 것은 하기 싫은것을 해내야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것 투성이인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는 오늘도 아이 셋과 시간을 함께 통과한다.
남편이 있어 다행이다. 오늘 하루도 함께 협업하여 잘 통과했다.
오늘 아쉬움은 또 내일이라는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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