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일단 다른 이웃들에게는 있지만 우리집에는 12년째 두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TV!
책을 많이 읽히고 싶다면 당연히 두말말고 티비는 없어야 한다. 이는 부모인 내가 봐도 티비는 절대적 시간잡아먹는 하마이다.
유혹에 더욱 넘어가기 쉬운 어린아이들은 어떠랴?!
절제능력이 어른보다 약하디 약한 아이들에게 티비는 절대악이다.
상상력, 창의력, 사고력 모두 현저히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말자!
자 그리고 두번째 현재 초등학교 5학년, 초등학교 2학년, 유치원생이 있는 우리집 아이들은 핸드폰이 없다.
이는 학교가 걸어서 20분정도 걸리는 거리이기도 하고, 부모님이 집에서 근무하는 환경 때문에 그렇다.
맞벌이 하는 부부들은 생존 확인을 위해 일찍이 스마트폰을 사준다고 하는데 우리는 맞벌이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도 벌써 난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학급 단체카톡안내라던지, 그런것들인데 이미 부모님 앱에 안내가 되어있어 크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중, 고등학교때는 어떻게 이런 난관을 극복해나가야할지 고민이다.
둘째는 여자아이라 친구들과 카톡하고 싶다며 내 핸드폰을 잠깐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없으니까 빌려준다 생각하고 건네 주었는데 상대방 친구가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카톡을 보내 불편했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핸드폰의 주인은 나인데 불편을 느끼는것도 이상하고 딸은 엄연히 스마트폰이 없는 상태인데 그것을 좀 해결코자 쥐어주는게 맞나 싶었다. 나의 최초목표가 흔들린것이다. 그래서 다시 둘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아쉬워 했지만 또 그런대로 지금은 자기 할일 알아서 하고 있다.
오늘은 받아쓰기 공부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 시작한 얘기인데 자랑만 늘어놓은것 같다.
바로 오늘 아침이였다. 최근 둘째가 받아쓰기 점수를 잘 받아오다가 50점까지 떨어져서 이제 받침이 섞이고 힘들때인가보다 했다.
그래서 시험이 있는 오늘 내가 문제를 내주고 받아쓰라고 했는데 앗뿔싸!
3개를 제외하고는 다 틀리는 바람에...속으로 흠칫 놀랐다.
그래서 자~ 틀린 글씨를 다시 한번 써보자 하고 권했는데 너무 헷갈리고 자꾸 틀리니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고
하기 싫은 마음까지 생긴 모양이다.
이상태에서는 공부를 시키지 않는것이 좋다. 하기 싫어진 마음까지 들기 시작하면 거부하기 때문에
그래서 순간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서 해보는건 어떨까 싶었다.
둘째는 야무지고 동생 가르치길 좋아하는 면이 있기도 한걸 엄마인 내가 알기 때문이다.
자~ 주은이가 문제내봐바 엄마가 한번 받아써볼게!
여기서 엄마는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모두 다 맞히는것이 아니라 아이가 틀린 부분을 똑같이 틀려보는 것이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잇는 아이는 정답글씨와 내가 일부러 틀린 글씨를 맞춰보며 희열을 느끼는 듯 하다. '엄마도 저거 틀리네? 나만 모르는게 아니였잖아!'하며 안도의 한숨을 느끼는것도 같다.
그리고 채점을 하라고 시켜본다. 신나게 채점을 한다. "엄마 이거 틀렸네! 이거도 이거도!"
엄마는 이럴때 감정을 실어 최대한 리얼하게 연기를 한다. "하.....ㄹㅂ 이였네? 힝~ ㄹㅎ이였잖아!! "
아이는 내가 틀린 부분들을 고쳐주며 실제로 자신이 받아쓰기 했을 때 틀렸던 부분들을 스스로 고쳤다.
그리고 다시 아이가 받아쓰기를 했을 때는?1개만 틀리고 9문제를 다 맞추었다.
놀라운 결과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은 혼자 어려움에 당했다고 느낄때의 상한마음에 대비해 함께 어렵다고 느끼면 훨씬 마음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렇다. 나만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 상태, 자주자주 주변을 돌아보아 모두가 힘든 상황을 겪고 있으며 누구나 어려운 환경가운데 살아간다는 것, 그걸 느낀다면 훨씬 지금의 어려운 상태를 감내할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일류대, 하버드같은 곳에 보내려고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럴 여력도 없고 거기에 간다고해서 인생이 행복하다는 확증도 없기 때문이다.(티비에 나오는 사람들 말고는...)
우리 부부가 내린 확실한 결론은 자신을 알고 자신이 어디에 필요한 사람인지 알고 어디에 행복을 느끼는지 그 지점을 찾아낸다면 우리에게 단 한번 주어진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맡겨진 아이들의 최종 목표는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공장에서 드르륵 박아 나온 똑같은 모양의 기성 바지가 아니라
각자의 창조된 의미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삶의 목적이다.
그래서 그렇게도 많은 시간 속에 아이들을 심심하게 하고 놀게하고 읽히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나에게 맡겨진 환경안에서 나는 그렇게 나자신을 찾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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