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는 3명의 자녀들과 동일한 한 남편과 결혼의 관계를 지속하는 대한민국의 한 아줌마다
불륜따위는 크나큰 죄악으로
내 인생에서 침범 할 수 없도록 인생을 유지하는 입장이다.
보기 전 생각했던 것은 이런영화 참 별로인데하다가
결론적으로 다 보고나니 원작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높은 수위들은 워낙에 예전에 야한 영화들로 단련이 되어서 큰 자극은 없었고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는 불륜을 아름다운 결론으로 이어지게 만든 즉 이렇게 영화화 된 원작이 궁금했다.
네이버에 지식백과에 내용을 쭈욱 읽었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내용들이 훨씬 많았다.
영국의 산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기계문명 속에 인간조차 기계화가 되어가는 슬픈 현실을 세 인물을 통해 써 내려간 훌륭한 작품이였다. 원작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네이버 지식백과를 찾아보면 큰 도움이 될 것같다.
서양고전을 다룬 책내용에서 발췌한 내용인데 꾀 읽음직하고 훌륭한 내용들이다.
광산을 운영해 부를 유지하는 클리포드 채털리 집안과 결혼하게 된 여주인공 코니
전쟁을 다녀온 남편은 하반신 불구가 되고 결국은 휠체어신세가 된다.
둘은 랙비라는 어마어마한 저택으로 이사하고 거기서 클리포트는 작가의 삶을, 코니는 아내로써 내조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하반신 불구가 된 클리포드는 코니와의 성생활을 만족시켜줄 수 없었고 영화에서는 오히려 부부관계를 포기하는 듯하게 그려져있다.
이장면에서 클리포드는 남성성을 포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코니는 부부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지만 쉽지 않다.
부부는 역시 둘의 노력이 필요한거지 혼자는 안된다는 점...
그렇게 지루한 저택 생활을 하던 도중 사냥터지기로 저택에 취직한 올리버와 마주치게 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 이미 몇번의 스파클이 튀는 장면이 있는데 묘하게 관객은 그걸 눈치채게끔 연출한게 참 기가막히다.
부유한 집안의 대를 이어야하는 클리포드는 코니에게 크나큰 제안을 하게 된다.
자기가 아니여도 아이를 갖을 수 있는거 아니냐며?
여기서 우리는 돈을 위해 인간성을 잃어가는 한남자로부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막대한 부를 이루려면 사실상 그만큼 버려야하는 것도 많다.
동물 취급받는 광부들의 모습, 둘만사는 크나큰 저택에 일하는 수많은 하인들, 밥줄이 끊길까봐 돌연 적으로 바뀌는 친구들, 이러한 모습들로부터 나는 현대 사회또한 그때와 같이 씁쓸한 사회는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클리포드의 모습에서는 한치의 따뜻한 인간적인 감정을 느낄 수 가 없다는 것,
남자로써 상징하는 남성성조차 그 막대한 부에 짓밟혀 없어지는 참혹한 현실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자신도 자신의 휠체어처럼 산업사회의 커다란 톱니바퀴처럼 살아간다.
이런 부분은 사실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러나 인간적인 코니는 남편 클리포드에 비해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여성이다.
남편의 비인간적인 요구에 화를 내지만 그래도 아내로써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몇몇 장면들은 같은 여자로써도 안쓰럽다.
그러다가 클리포드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의 소유자 올리버가 나타난다.
그것도 맡은 직무가 사냥터지기야...아오...대박! 유레카!ㅋㅋㅋㅋ
남성성의 끝판왕으로 올리버의 등장은 그리 빠른편은 아니다. 저택의 하인들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잠시 얼굴을 보여주다가
영화의 3분의 1 지점에서 등장하는데
제작자는 많은 관객들이 제목에서도 예상 했듯 연인이 누구야 빨리 나와라!! 쪼옴!!!하며 가슴 졸이길 원한듯하다.
코니와 올리버가 서로 홀로 지낸만큼 오래 굶었기에 서로는 많은....자주....그렇게.....저렇게.....
그런 장면들이 나오지만 보는 내내 역시 사회적으로 금기시 된 불륜의 관계인지라 누군가 보고 있지는 않을까? 들키지는 않을까? 저렇게 과감하면 안될텐데?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걱정과 불안으로 100%만족할 수 없도록 감상하게 된다.
역시나 임신을 위해서는 자주하는게 최고의 방법이듯 코니는 올리버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올리버 또한 돌싱으로써 이혼이 안된 상태에서 모든 자기의 행복을 포기한 상태여서 다시 결혼을 시작하고 아이를 위해 산다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이 있었다.
클리포드 역시 자기의 씨는 아니여도 상관없다고 했었고 코니역시 올리버의 아이를 갖는것이 더 좋았다.
뭔가 상황이 안될것 같으면서도 세 주인공들만 암묵적 합의가 되면 잘 지나갈 것 같기도 했지만
그 둘의 밀회는 온 동네방네로 소문이 나고 코니는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이혼을 요청한다.
결국 이혼을 한 코니와 저택에서 강제퇴사한 올리버는 잠시 헤어지게 된다.
그 둘은 마지막 드넓은 초원에 친구의 도움으로 얻은 올리버의 허름한 작은 집 앞에서 키스를 하며 영화는 끝난다.
마치 커다란 초원이 그들을 보호해줄 것만 같았고 거대한 자연이 그들의 사랑에 응원을 보내는 듯 하다.
그때의 영국배경의 산업사회나, 지금의 현대사회나 다를게 뭐가 있나 싶다. 지금도 부익부 빈익빈은 진행되는 상황이고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자기의 인간성까지도 버려가며 투자해가는 물질화된 지금의 현대사회는 사실 더 악랄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속이고, 부를 쌓기 위해 경쟁자를 자신보다 더 못한 인간으로 치부하고,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 그럴싸한 스토리텔링으로 눈먼 소비자를 우롱하는 시대...
물론 그런 나쁜 인간들에게 자기의 욕심으로 인해 끌려가는 대중들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이끌 수 있는 위치라면 보다 건강하게, 보다 인간적으로, 더불어 모두 잘되는 방법으로 인도해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요즘은 그 중요한 자리들에 죄다 아닌것 같은 사람들만 앉아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쫌 안좋긴하다.
그래서 나는 코니와 올리버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사랑을 위해 과감히 자신의 가진 모든 부와 명예를 버린 코니,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기준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올리버
이 둘은 남녀간의 사랑을 영화에서 보여주지만 반면 우리 또한 우리가 쌓아온 성공과 부를 존엄한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 때론 포기할 줄 알며 계속해서 나의 기준으로 인생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기준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아직 이 영화를 안봤다면 보시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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