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ersen 단편선]
성냥팔이 소녀
김선희 역
지독히도 추운 날이었다. 눈이 내리고 어둠이 찾아왔다. 그해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한 가엾은 소녀가 모자도 쓰지 않고 맨발로 춥고 우울하게 거리를 걷고 있다. 물론 집을 나설 때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신발은 엄마의 것이었기에 소녀에게 너무 컸다. 어린 소녀는 길을 뛰어 건너다가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는데 마차 두 대가 덜컹거리며 엄청나게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신발을 다시 찾을 수 없었다. 한 소년이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요람으로 쓰겠다면서 나머지 한 짝을 가지고 달아나버렸다. 그래서 어린 소녀는 맨발로 걷고 있었다. 두 발은 꽁꽁 얼어 울긋불긋했다. 낡은 앞치마에 들고 가는 성냥갑 몇 개가 있었다. 소녀는 성냥 하나를 손으로 들어 내밀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소녀한테 성냥을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사람도 1센트를 주지 않았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벌벌 떨면서 소녀는 기어갔다. 비참한 그림이다, 가엾은 소녀!
눈꽃이 소녀의 긴 머리카락 위로 떨어져 내려 목을 구불구불 휘감았다.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거위를 굽는 근사한 냄새도 흘러나왔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렇다, 소녀는 그 생각이 간절했다!
집 두 채 사이 모퉁이에 다른 집보다 길 쪽으로 더 튀어나온 곳이 있었는데 소녀는 그곳에 앉아서 발을 끌어당겨 몸을 웅크렸다. 점점 더 몸이 추웠다. 하지만 집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성냥을 팔지 못했기에, 1센트도 벌지 못했기에 아버지는 분명 이 소녀를 흠씬 두들겨 팰 것이다. 게다가 집은 너무 추웠다. 지붕 말고는 불어대는 바람을 가릴 게 없었다. 제일 크게 갈라진 틈을 지푸라기와 천 조각으로 막았는데도 그랬다.
손은 동상을 입은 듯 거의 움직일 수도 없었다. 작은 성냥 하나가 온기를 어느 정도 더해줄지도 몰랐다! 소녀가 성냥갑에서 성냥 하나를 꺼내 벽에 그어서 손을 따뜻하게 할 수만 있다면……. 소녀는 하나를 꺼냈다. 치지직! 성냥은 탁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온기를 주며 작은 초처럼 환한 불꽃을 일으켰다. 소녀가 그 불꽃 위로 손을 올리자, 이상한 빛이 일었다!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나는 황동 손잡이와 뚜껑이 달린 거대한 쇠 난로 앞에 자신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불이 얼마나 멋지게 타오르는지! 얼마나 편안한지! 소녀가 발도 녹이려 발을 내밀었다. 문득 작은 불꽃이 꺼지고 난로는 사라졌다. 손안에는 다 타버린 성냥만 남아 있었다.
소녀는 성냥을 하나 더 벽에 그었다. 성냥은 밝게 타올랐다. 불빛이 벽을 비추자, 하늘하늘한 막처럼 투명해져서 방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가 있었다. 탁자에 눈처럼 하얀 식탁보가 덮여있고, 그 위에 찬란하게 빛나는 저녁 식사가 차려있다. 사과와 자두로 속을 채워 구운 거위에서 먹음직스럽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더더군다나 그 거위가 접시에서 펄쩍 뛰어내려 칼과 포크를 가슴에 품고 이 어린 소녀에게 곧장 걸어왔다. 문득 성냥이 꺼졌다. 두껍고 차가운 벽만 보일뿐이었다. 성냥 하나를 더 밝혔다. 문득 소녀가 몹시도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앉아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부자 상인의 집 유리문을 통해 본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수천 개의 초가 초록 나뭇가지 위에서 활활 타오르고 판화 가게에 있는 것과 같은 알록달록한 그림이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어린 소녀는 두 손을 내밀었다. 문득 성냥이 꺼졌다. 크리스마스 불빛은 더 높이 올라갔다. 불빛은 이제 하늘에 환한 별처럼 보였다. 별 하나가 길게 줄을 이루며 떨어져 내렸다. 소녀는 생각했다.
‘지금 누군가가 저세상으로 가고 있구나.’
지금은 저세상으로 간, 누구보다 소녀를 사랑했던 할머니는 별이 떨어져 내리면 영혼 하나가 하늘로 올라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성냥을 하나 더 벽에 그었다. 다시 환하게 불꽃이 일었다. 그 불꽃 속에 할머니가 친절하고도 사랑스럽게, 맑고 환하게 빛을 내며 서 있었다.
소녀가 외쳤다.
“할머니! 아, 저를 데려가 주세요! 성냥이 꺼지면 할머니가 사라지리란 걸 알아요. 할머니는 따뜻한 난로처럼 사라질 거예요. 저 맛있는 거위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처럼요!”
소녀는 할머니와 함께 있고 싶었기에 재빨리 성냥 꾸러미를 모두 밝혔다. 성냥이 무척이나 환하게 빛나서 낮보다 더 밝아졌다. 할머니가 그렇게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소녀를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땅 위로 밝고도 경쾌하게 날아올랐다. 아주, 아주 높이. 저 위 추위도 배고픔도, 두려움도 없는 곳으로……. 두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있었다.
하지만 모퉁이에서, 미소 짓는 입술에 붉은 뺨의 어린 소녀가 벽에 기대어 앉아 묵은 해의 마지막 밤에 얼어 죽었다. 새해의 태양이 측은한 한 사람의 모습 위로 떠올랐다. 소녀는 그곳에 얼어 뻣뻣하게 앉아있었다, 거의 다 타버린 성냥 꾸러미를 움켜쥔 채로…….
옮긴이 약력 : 김선희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공부했습니다. 소설 『십자수』로 근로자문화예술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뮌헨국제청소년도서관(IYL)에서 펠로십(Fellowship)으로 어린이 및 청소년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김선희’s 언택트 번역교실>을 진행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꿈의 나라, 유토피아』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윔피 키드」 「드래곤 길들이기」 「위저드 오브원스」 「멀린」 시리즈, 『생리를 시작한 너에게』 『팍스』 『두리틀 박사의 바다 여행』 『공부의 배신』 『난생처음 북클럽』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등 200여 권이 있습니다.
댓글